건강 식품에 완전 미쳐버린 남편, 주부가 죄인가요? / 사연읽어주는남자
이번 사연은 대전에 사시는 50대 주부께서 보내주셨습니다.
TV에서 건강 프로그램만 나오면 미친 듯이 사는 남편
하지만, 안 좋다는 소식만 들어오면 바로 다 버리는 남편을
맞춰주며 살다가, 결국 남편이 선을 넘어버린 사연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은 제 남편 먹는 생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휴, 이 얘기 하려면 욕을 한 바가지를 써도 모자라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무지하게 열받습니다.
먹는 이야기라고 하니 남편 식탐이 어지간한가 보다
짐작하는 분들도 계시겠죠?
근데 차라리 식탐 많고, 잘 먹는 남편이면 좀 편하겠습니다.
그냥 치킨 시켜주고 라면 끓여주면 맛있다고 후루룩 먹는 사람이면
저는 그냥 고맙게 생각하고, 백날 천날 시켜주고 살랍니다.
저희 남편은 먹을 걸로 까탈을 부려도 보통 부리는 인간이 아니걸랑요.
저희 부부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애들도 이제 다 컸고요.
저희 나이대 분들 다 그러시겠지만 저희도 건강에 관심이 많아요.
셋만 모였다 하면 다들 그 얘기들이니 관심을 끊으려야 끊을 수도 없죠.
그런데 남편하고 저는 몸 관리하는 스타일이 좀 다르달까요?
저는 어릴 때 두메산골에서 자연과 함께 자란 사람이라 그런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하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입니다.
옛적부터 과유불급이라고 했잖아요?
'뭐든지 적당히', 그게 제 신조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저랑은 반대로 한 번 했다 하면 끝을 보는 사람이에요.
이런 성격이 회사에서는 능력 발휘를 하는 모양이지만
그런 사람이랑 20년 넘게 아웅다웅 살고 보니
저는 정말 이제는 징글징글 하기만 합니다.
예를 들어서 비타민만 해도요, 종류별로 어찌나 사 모았었는지.
회사 건강검진에서 비타민D가 부족하다고 나왔었는데,
요즘 기분이 울적한 게 그것 때문인 것 같다면서 큰 통으로 하나를 삽니다.
인터넷 검색은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우리 집 검색왕이에요.
그러더니 비타민 D만으로는 안된다며 오메가 3와 엽산도 구매합니다.
그래야 우울증 개선이 된다나요?
근데 제가 볼 때 남편은 우울증이 조금도 없어요.
오히려 너무 기력이 넘쳐서 뭘 저렇게 부산을 떠는 게 문제라면 문제죠.
그래요, 중년 남자가 자기 건강 챙기는 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처음엔 저도 요일별 약통까지 사서 거기다 매일 영양제도 하루치씩 넣어주고 그랬어요.
근데 사람 화통 터지게 하는 게 뭐냐면요.
저러고 몇 달 난리를 치다가 어느 날 또 갑자기 다 뒤집어엎는 거예요.
비타민 영양제 먹던 사람들이 암 걸릴 확률이 더 높다나요?
비타민 좋단 소리 그게 다 제약회사들 농간이었다면서
집에 있는 비타민들 다 갖다 버리라고 합니다.
TV에서 또 무슨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본 거죠.
그 영양제들, 약국에서 제일 좋다는 것들로만 사다 놔서 그게 다 돈이 얼마짜린데 버려요?
그 소리 듣고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결국 제가 그냥 꾸역꾸역 다 먹었습니다.
그렇게 비타민을 똑 끊은지 몇 주나 지났을까?
어느 날은 또 소파에서 휴대폰 보던 양반이 박차고 일어나서 헐레벌떡 부엌으로 가더니
비타민을 종류별로 허겁지겁 입에 털어 넣더라고요.
왜 그러냐 했더니 비타민을 먹던 사람이 갑자기 끊으면
또 어디 결석이 생긴다나 그런 글을 본 거죠.
그러면서 또 비타민 먹기 시작하대요.
제가 남편 때문에 제일 열불이 나는 포인트가 바로 저 팔랑귀입니다.
새로운 건강식품에 꽂혔다 하면 한동안 과량 복용하며 효과를 찬양하다가
어디서 다른 이야기가 들리면 또 이게 다 제약회사 농간이라며 화를 내고 뒤집어엎는 거죠.
그놈의 제약회사 농간 소리는 1년에 한두 번씩은 꼭 들어요.
그럴 때마다 집안에 무당 굿하듯이 난리를 치면서 다 갖다 버리라고 성화입니다.
이러길 어언 십몇 년, 클로렐라부터 프로폴리스, 홍삼, 비타민, 해독주스
최근엔 유산균까지, 건강식품 종류만 바뀌었지 패턴이 정말 똑같아요.
클로렐라 때도 만병통치약인 양 하도 음식마다 넣으라고 난리를 쳐서
클로렐라 밥, 클로렐라 김치, 클로렐라 국...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근데 지금은 어떤데요?
클로렐라 때 일, 기억이나 하는지 모르겠어요.
전에도 TV에서 의사가 나와서 뭔 말만 하면 다 따라 했는데
요새는 인터넷이니 유튜브니 얼마나 많아졌어요.
남편은 정말 하루 종일 건강 정보 채널들 끼고 살면서 읽고 또 보고합니다.
그러더니 이 사람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더라고요.
작년 일입니다.
남편이 며칠간 무슨 책 한 권을 되게 열심히 읽더라고요?
미국에 무슨 의사 출신 요가 강사?
그런 사람이 지은 책인데
우리가 아픈 게 다 인공적인 화학물질, 식품 첨가제 때문이래요.
그래서 방부제나 보존료 같은 화학물질을 안 먹으면 면역력이 커지고
대부분의 병을 자연 치유할 수 있다나요?
그 책에 꽂혀서 몇 날 며칠, 줄치고 베껴스며 열심히 읽더니,
글쎄 저한테 장을 직접 담그라는 겁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간장, 고추장들은 방부제, 보존료 때문에 안된대요.
근데 저도 이런 사람이랑 살다 보니까 식단을 보통 신경 쓰는 게 아니거든요.
좀 비싸도 다 유기농 국내산으로 장을 보고
된장 고추장도 첨가제 안 쓴 천연 제품으로 조금씩만 사다가 써요.
그래서 남편한테
"그럴 필요 없다.
우리 집은 지금도 다 그런 것만 먹어"
라고 하니까 남편은 안된대요, 못 믿는대요.
장도 다 직접 담가먹고 집에 있는 플라스틱 용기들도 다 버리고
심지어 샴푸, 린스, 비누, 세탁세제, 설거지 세재도 만들어 쓰자고 합니다.
자기가 만드는 방법도 다 알아놨다나요?
일명 '노 케미족' 이랍니다.
"아우!, 나는 그러게는 못 살아!
당신, 몇 살까지 살려 그래?
200살까지 살려고 그러는 거야?
혼자 그렇게 살아, 난 싫어!"
"아니 이 사람아, 누가 오래 살자고 이렇게 하나.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자고 이러는 거지.
요새 피곤하고 잠 안 오고 머리 아프고, 이런 게 다 화학 물질 때문이라니까?"
"사람이 하루 종일 머리 쓰면서 일했으면 피곤하고 머리 아픈 게 당연하지.
안 피곤하면 그게 로보트지, 인간이야?
자기는 노 케미족?
그런 거 하기 전에 술이랑 담배나 좀 끊어!"
네, 제가 또 열받는 포인트가 바로 이겁니다.
회사에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술을 마셔대고
매끼 그렇게 기름지고 짠 걸 먹으면서
집에만 오면 저렇게 천연 천연 난리를 치는 거예요.
남편 왈, 회사에서 먹는 거, 스트레스 받는 건 어쩔 수가 없으니까
집에서라도 건강 관리를 해야 된대요.
회사 생활하면서 음식 하고 술은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다나요?
없긴 뭐가 없어요? 직급 있고 연차가 얼만데
자기가 술 안 먹겠다 음식 가리겠다 건강한 걸로 먹자 하면 그렇게 먹는 거지
매일같이 치킨이니 햄버거니 회사에서 먹고 오면서
집에만 왔다 하면 또 나를 들들 볶아요.
장을 담가라, 샴푸를 만들어라, 이렇게나 피곤하게 나오니 제가 어디 살겠습니까?
나는 도대체 무슨 죄입니까?
제가 정말 감정이 상하는 건, 제가 아무렇게나 살림해온 거 아니거든요.
건강에 유난히 신경 쓰는 남편 스트레스 안 주고
애들 건강하게 먹이려고 다른 집 엄마들보다 2배 3배
먹거리에 신경 쓰고 식단 짜면서 음식 해왔어요.
그런 제 노력은 알아주지도 않고 고맙단 말 한마디 안 하면서
지금보다 몇 배 더 힘들게 하라고 하니 그걸 제가 하고 싶겠습니까?
이 문제로 거실에서 애들 아빠랑 대판 싸우고 있자니
지방에 있던 큰딸이 나와서 한마디 합니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싸우지 말고 주말에 가족회의를 하재요.
저희 집은 솔직히 그런 거 안 하고 사는 집이거든요.
전 단칼에 싫다고 했죠.
남편은 냉큼 그러자고 하대요?
그도 그럴 것이 전 어디 가서 회의라는 거 해본 적도 별로 없고 말주변도 없어요.
노 케미족?, 그거 갖고 회의해봤자 저는
"싫어요, 힘들어요."
밖에 할 말이 더 있나요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이 가족들 건강 위해서 그것도 못하냐?"
이렇게 나오면 제가 거기다 뭐라 그러겠어요.
게다가 저희 딸이 제 아빠 성격을 똑 닮았거든요.
뭐 하나 붙들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데는 선수에요.
그리고 대학에서 전공이 하필 또 생물학이란 말이죠.
평소에도 몸매 관리한다고 음식 따져가면서 먹는 데다
자기가 살림 안 하니까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대충 아빠 편 들 거 같더라고요.
그렇게 둘이 편먹으면 저는 꼼짝없이
앞으로 장 담그고 샴푸 만들면서 살아야 돼요.
제가 그래서 싫다 그랬더니 둘이 아주 짝짜꿍이 맞아가지고
셋 중에 둘이 찬성이니까 과반수 넘으면 해야 된대요.
그래서 그 주 토요일 저녁.
울며 겨자 먹기, 억지 춘향으로 그 가족회의라는 걸 열었죠.
먼저 남편이 그놈의 그 징글징글한 책을 들고 나와서
인공 합성물, 화학 물질이 얼마나 나쁜지 책에서 발췌해가며 낭독을 하더라고요.
책에 적힌 내용이 그럴싸해서 하마터면 저도 넘어갈 뻔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딸이 발표를 시작했죠.
근데 아니 얘가 그 며칠 새 PPT까지 만들어 왔더라고요.
저는 저희 집 TV에서 PPT가 나올 수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그 큰 거실 TV로 PPT가 촤악 나오니까 신기하고 집중이 확 되긴 하더라고요.
딸은 이런 말로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안아키를 아십니까?"
반전!!!!!
딸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카페를 예시로 들면서
이 사람들도 천연 된장 만들고, 식품 첨가제 피하는데
그 자식들은 병 키우고 아프고 난리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인공 합성물이 다 나쁜 게 아니다.
심지어 약과 백신도 인공 합성물이며 지금 식품류에 사용되는 첨가제 대부분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연구결과와 논문들을 쭉 나열하면서
화학물질을 끊는다고 해서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주장은
믿을만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못을 박더라고요.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 교육한 보람을 그때 느꼈습니다.
화룡점정으로
"우리 집은 이미 천연 된장, 간장, 고추장을 먹고 있고
조미료도 대부분 엄마가 직접 만들어서 쓰고 있고,
식재료도 유기농 국산으로만 사 먹습니다.
인공 합성물과 첨가제 때문에 면역력이 낮아진다면,
첨가제 범벅으로 요리하는 다른 가정은 집집마다
다~ 중환자가 있어야 그 가설이 설득력이 얻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요새 애들 말로 사이다, 사이다
그런 사이다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딸은 그동안 제가 애쓴 거 알아주는 거 같아서 고맙기도 했고요.
딸은 마지막으로 애들 아빠가 맨날 하던 소리로 발표를 마무리했습니다.
"이게 다 천연식품을 파는 식품회사들의 농간은 아닐까요?"
저는 발표가 끝나자마자 일어나서 손뼉을 쳤습니다.
저도 모르게 기립박수가 나오더라고요.
남편도 딸이 워낙 똑 부러지게 말을 잘해놓으니까
자기도 따라서 박수를 치대요?
저희 남편이 또 딸한테 쥐약이거든요.
사니 못 사니 아웅다웅하고 속을 끓여도
애들 하나 보고 참고 산 보람이 이런 거 아니겠어요?
남편은 그 이후로 노 케미족에 니은도 안 꺼냅니다.
어지간하면 그냥 주는 대로 먹고요.
건강식품 관련해서 뭐 듣고 온 게 있으면 이제 딸한테 먼저 물어보더라고요.
보통 편해진 게 아니에요.
제 딸 똑 부러졌던 그날을 생각하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네요.
까탈스러운 남편 잡는 데는 역시 딸내미 공격이 최고입니다.
이번 사연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시 남편 잡는 데는 딸이 최고인 거 같습니다.
사연자분의 딸이 중립적인 자세로,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니
앞으로는 가정에 평화만 있으실 거예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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